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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5-4517(Print)
ISSN : 2287-3503(Online)
Journal of Environmental Science International Vol.27 No.2 pp.123-133
DOI : https://doi.org/10.5322/JESI.2018.27.2.123

The Garden Ponds of Baekje and Asuka

Ji Soung Baik*, Jin Seung Kim
Department of Landscape Architecture, Chonnam National University, Gwangju 61186, Korea
Corresponding author: Ji Soung Baik, D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Chonnam National University, Gwangju 61186, Korea. +82-62-530-2104,qasq11@hanmail.net
20180122 20180129 20180201

Abstract

The historical exchanges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Japan have broadly occurred, in terms of both political and cultural aspects, from ancient to modern times. Regarding ancient gardening culture, in particular, Asuka developed gardens with the gardening techniques passed down by the Baekje people. The development of the basic form of a garden pond along with its characteristics, established through such exchanges, is suggested by investigating its components through analysis of data from the gardens of Baekje and Asuka. In terms of the garden pond structure, homogeneity was confirmed between Baekje and Asuka, with a linear rectangular form as the basic design. In addition, the vertical construction technique was used by both ancient kingdoms. In terms of the types of stone used in building the shore of the garden pond, Baekje used diverse types such as natural stone, crushed stone, and cut stone. In contrast, rounded river stone was used by Asuka. Regarding the floor of the garden pond, Baekje used soil, which enabled the planting of lotus flowers. In contrast, Asuka used stones to pave pond floors, which made the growth of plants impossible. In terms of layout, Baekje used ornamental stones for pond landscaping, while Asuka used manmade island and water intake facilities in their pond construction. The effects of Baekje’s garden culture on Asuka’s garden building can be seen from its influence on the form of the garden pond and shore construction style. In terms of the construction of the garden pond’s shore with the same stones and the stone flooring, the garden ponds of the Asuka Kingdom reveal technically unified and refined aspects.


백제와 아스카(飛鳥)의 園池構成

백지성*, 김 진성
전남대학교 조경학과
    Chonnam National University

    1.서 론

    고대사에 있어서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적인 교 류는 정치와 문화의 측면에서 폭 넓게 이루어졌는데, 이는 중국을 포함한 동양3국간 교류의 맥락에서 그 원 류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교류 는 당시 높은 수준의 문화를 이루고 있었던 중국으로 부터 한국으로 전파되었으며, 이는 다시 일본으로 전 해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교류는 고대국가 가 형성되어 근세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문화적 측 면에서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정원문화 역시 고대의 역사적 기록에 보이는 정원 조성에 관한 기술이 ‘연못을 파고 꽃을 심고 동물을 키웠다’라는 내용을 포함한 것으로 중국, 한국, 그리 고 일본에서 모두 일관된 내용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으로 보아 정원의 원지조성에 대한 조영의 개념은 중 국이 모태가 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중국은 일찍이 진(秦)의 시황제와 한(漢)의 무제가 조영한 궁전 및 궁원이 기원전 2~3세기의 일로 아방 궁과 상림원, 그리고 태액지 등 당시의 궁원의 모습이 한국과 일본으로 전파된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의 경 우 三國史記에 의하면 백제 진사왕 7년(391), 동성 왕 22년(500) 등의 기록에 못을 파고 진귀한 짐승을 길렀다는 기록에서 일찍부터 중국의 영향을 받았음 을 알 수 있다(Lee, 1997). 마찬가지로 일본의 경우에 도 日本書紀에 무열(武烈)천황 8년(506) 황거(皇居) 에 연못을 파고 정원을 만들어 금수를 길렀다는 기록 을 볼 수 있다(Mori, 1986).

    특히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의 문화적인 교류를 확인할 수 있는데 정원문화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일본의 역사서 日本書紀에 등장하 는 백제에서 도래한 장인의 기사는 일본 역사상 작정 에 관한 최초의 기록으로 주목된다. 추고(推古)천황 20년조(612)의 기사는 정원문화가 백제에서 일본으 로 전해진 명백한 증좌로 볼 수 있다. 그 내용은 백제 로부터 표류하여 온 로자공(路子工, 또는 芝耆摩呂)이 그의 특기를 인정받아 황거의 남쪽 정원에 수미산의 모양을 만들고 오교(吳橋)라는 중국풍의 목교를 설치 하였다(‘仍令構須彌山形及吳橋於南庭 時人號其人曰 路子工亦名芝耆摩呂’). 당시의 일본의 정원이 외래의 기술자에 의해 중국풍, 또는 한반도류의 형상을 나타 내기 시작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기록으로 중요하다.

    원지(園池)는 고래(古來)로부터 전통적으로 정원의 중요한 요소로 취급되어 왔으며, 해양을 모티브로 하 여 넓은 바다를 표현하는 것이 보편화된 생각이었다. 관상과 더불어 오락이 어우러진 장소로서의 원지는 실제의 풍경을 모사하여 축소된 형태, 또는 관념적인 사상을 토대로 상징화한 형태로써 조성되어 건축물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위치에 자리매김 되는 공간구성 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원지는 정원에서 공간을 구성 하는 중요한 요소로써 원지의 형태와 크기, 위치 등은 정원의 형식을 결정짓는 요인으로서 작용한다.

    고대 중국정원의 원지는 자연스러운 호안선을 갖 는 형태로 조성되었는데 백제는 직선형 호안의 방지 로 조성되었다. 한편 백제의 방지는 아스카로 전래되 어 역시 직선의 호안을 사용한 방지가 조성되었다. 따 라서 방형의 원지는 백제에 그 원류가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방형 원지의 근원지라고 할 수 있는 백제로부터 아스카에 전래된 방형 원지에 대하 여 정원의 발굴자료를 근간으로 하여 원지의 동질성 을 도출함으로써 정원문화의 전래에 대한 역사적 사 실을 확인한다. 또한 실제로 구현된 정원의 원지에 대 한 구성요소의 세부적인 검토를 통하여 백제와 아스 카 원지의 독자적인 특징을 도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연구범위 및 방법

    연구의 대상이 고대정원의 원지에 국한되어 정원 의 전모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이 한계이기는 하지만 정 원의 주요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원지에 주안점을 두어 구성상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고대의 중국으로부터 한국과 일본으로 다양한 문 화가 전파되고 발전을 거듭하여 한국은 통일신라시 대, 그리고 일본은 평안시대 이후 각각 독자적인 문화 의 색채가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된다(Yoo, 2013). 본 연구는 한국과 일본이 독자적인 특색을 보이기 이전 의 시대를 대상으로 하여 문화적인 교류를 통해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받았던 시기의 원지조성과 그 특징 을 살펴보고자 하며, 이로써 정원문화가 전파되어 조 영된 정원의 형태와 구성에서 그 영향을 유추해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시간적 범위로 한국은 백제시대에 조성된 정원을 대상으로 하며, 일본은 아스카시대에 조성된 정원을 대상으로 한다. 특히 백제(BC18~660)와 아스카(552~710)는 각각의 시대의 시점과 종점은 차이가 있으 나 동일한 시기를 함께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정치와 문화적으로 교류가 활발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내용적인 범위는 발굴조사 된 정원유구의 원지를 대상으로 발굴성과의 자료에 기초하여 원지의 형태와 규모, 호안과 바닥, 수심 등 원지의 구성상의 특징으로 한다.

    본 연구에서는 지금까지 발굴조사 된 백제의 원지 중에서 대표적인 4개소의 사례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또한 다수의 아스카의 원지에 대한 사례 중에서 부분 적인 발굴조사를 제외하고 방지로 확인된 4개소의 원 지유구를 대상으로 고찰한다.

    고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문화교류의 결과로 정 원에 표출된 원지의 구성요소에 대하여 상호 비교연 구를 통한 원지의 구성을 살펴봄으로써 고대의 한국 과 일본에 나타난 원지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 며, 원지의 기본 형태를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 한다.

    3.결과 및 고찰

    3.1.백제의 원지

    궁원조영과 관련된 기사를 보면 三國史記의 진사왕 7년(391)의 ‘春正月 重修宮室 穿池造山 以養 奇禽異卉’가 최초의 기록으로 단편적이지만 원지조성 과 관상행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후 동성왕 22년(500)의 ‘春 起臨流閣於宮東 高五丈 又 穿池養奇 禽’ 기록 역시 전술의 기술과 대동소이한 내용의 기사 이다. 또한 무왕 35년(634) ‘春三月 穿池於宮南 引水 二十餘里 四岸植以陽柳 水中築島嶼 擬方丈仙山’의 기 사는(Lee, 1997) 원지조영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 는데 신선사상의 방장선산을 거론한 것이 특이하며, 이는 고대 중국의 정원과 사상적인 배경을 같이 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백제의 원지에 대한 발굴자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3.1.1.부여 관북리 유적 원지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원지 유구는 장방형의 원 지로써 규모는 동서 10.6 m, 남북 6.2 m이고 깊이는 1.2 m이다. 호안은 할석(割石)을 수직으로 4~5단 쌓 아 구성하였다. 호안의 하단은 할석을 엉성하게 쌓았 으며, 상단은 육면체에 가까운 더 큰 돌을 줄지어 쌓아 미관을 고려한 것으로 생각된다. 원지의 북쪽에 위치 한 도수로의 입수구는 기와를 마주보게 겹쳐서 구성 하였는데 원형의 우물과 함께 출토되었으며, 출수구 는 확인되지 않았고 수심 또한 확인할 수 없었다. 바닥 은 토사로 구성되었는데 연꽃의 줄기와 뿌리가 확인 되어 연꽃이 식재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원지의 주 변에는 호안의 동쪽과 남쪽에서 호안에 평행하게 일 정한 간격을 갖춘 주공흔(柱孔痕)이 검출되었다 (Buyeo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2009, 이하 BNRI). 관북리의 원지는 궁궐 내의 원지로써 네 개의 모서리를 직각으로 구성한 장 방형으로 형태와 축조방식을 볼 때 전형적인 방지의 예로 볼 수 있으며, 연꽃을 식재하여 관상을 목적으로 조성 된 연지로 생각할 수 있다(Fig. 1).

    3.1.2.부여 정림사지 원지

    정림사지의 중문지 남쪽에서 출토된 원지는 중앙 에 축을 이루는 폭 3.0 m의 진입로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조성되어 있었다. 동쪽의 원지는 장방형 으로 동서 15.3 m, 남북 11.2 m이고 깊이는 0.5 m이 다. 서쪽의 원지는 방형에 가까운 원지로써 동서 11.2 m, 남북 11 m이고 깊이는 0.5 m이다. 원지의 호안은 동서의 원지가 동일하게 북쪽과 서쪽의 호안에 자연 석을 수직으로 쌓았는데 잔존 높이는 2단으로 0.5 m 이고 동쪽과 남쪽의 호안은 생토면의 토안(土岸)상태 로 조사되었다(Baekje Reseach Institute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1987, 이하 BRI). 두 개의 호안에 석재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특이한 예로써 석재가 다 른 곳으로 전용되었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정림사지의 원지는 중문으로의 진입로 양편에 조 성된 원지로써 동선을 중앙에 설치하고 좌우에 원지 를 배치한 형태인데 전이공간으로서의 원지를 건너기 위한 가교를 대신하여 진입로가 배치됨으로써 하나의 원지를 이등분한 형태로 생각된다. 이는 물을 건너가 는 종교적인 정화의 의미를 담은 원지로 생각할 수 있 으며, 사찰에 배치되는 영지(影池)로써의 역할을 겸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Fig. 2).

    3.1.3.익산 미륵사지 원지

    미륵사지 회랑지의 남쪽에서 확인된 원지로써 중 앙의 폭 50 m의 진입로를 중심으로 동서 양쪽에 조성 되어있는데 동쪽의 원지는 동서 49~51 m, 남북 48 m 이고 깊이 1.2 m이며, 거의 정방형의 형태이고 동북쪽 에는 입수구가 있다. 서쪽의 원지는 동서 51 m, 남북 41 m이고 깊이 1.6 m 내외이며, 장방형의 형태를 취 하고 있고 서북쪽에서 입수구의 일부가 확인되었다. 따라서 원지로의 도수는 서로 독립된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호안구성은 동쪽 원지의 경우 토안형태인데 자연 지형을 이용한 관계로 호안선이 다소 굴곡이 있다. 특 히 서쪽호안은 부분적으로 와편과 석재 등을 쌓은 호 안으로 축조되어 있다. 서쪽 원지의 호안은 점토를 이 용하여 축조되었는데 호안은 비교적 직선의 형태를 보이고 중간에 할석을 함께 섞어 조성하였다(Fig. 3).

    동쪽의 원지 바닥에서 와편(瓦片)이 다수 출도 되 었고 연꽃 줄기와 연밥이 출토되었으며, 북쪽과 남쪽 의 호안에서는 왕버들의 뿌리가 노출되었다.

    서쪽 원지의 동쪽과 북쪽 호안 모서리에서 왕버들 의 뿌리가 노출되었으며, 바닥에는 연꽃 줄기가 퇴적 되어 있었다(Buyeo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1996, 이하 BNRM).

    미륵사지의 원지는 자연지형을 적절히 이용하여 원지를 조성하였는데 원칙적으로는 직선호안을 사용 한 장방형의 원지이며, 호안에 대부분 흙을 사용하고 있는 점은 타의 원지와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사찰의 규모에 걸맞게 규모가 큰 원지를 조성하였는 데 사찰의 영지로써 역할을 생각할 수 있으며, 왕버들 과 연꽃의 식재는 관상의 기능을 추측할 수 있다.

    3.1.4.익산 왕궁리 유적 원지

    근래의 백제 유적에 대한 발굴 성과에서 가장 주목 되는 원지 유구로써 백제시대 정원의 원지 구성의 실 체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할 수 있으며, 30대 무왕 (600~641)대에 조성된 궁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지유적은 수조, 중앙의 원지, 그리고 집수시설의 세 개의 원지로 구성되어 있다(Buyeo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2010, 이하 BNR).

    3.1.4.1.수조

    수조는 장방형의 형태로 중앙 원지에 공급하기 위 한 물을 확보하기 위한 시설로 추정되며, 규모는 동서 48.4 m, 남북 2.56 m이다. 측벽은 가공 판석(0.7~1 m)을 세워서 축조하였으며 바닥에는 방수를 위한 점 토를 깔고 그 위에 점판암의 판석을 깔았다(BNR, 2010). 특이한 점으로는 북쪽의 측벽석 후면에 작은 괴석과 넓적한 강자갈로 장식된 부분이 있다(Fig. 4).

    3.1.4.2.중앙 원지

    중앙 원지는 입수부와 장방형의 원지, 출수부로 구 성되어 있는데 동서 2.8 m, 남북 8.4 m으로써 남북의 길이가 긴 장방형 원지의 바닥에 동서로 놓인 장대석 에 의해서 상하로 구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상부의 원지는 남북 3.2 m, 동서 2.8 m의 규모로 추 정된다. 북쪽 호안은 동서로 긴 궁원의 동서축대4를 호안으로 이용하고 있는데 축대는 직육면체로 가공된 석재로 축조되어 있으며 잔존 높이는 4단이다. 동쪽 호안은 1.4 m×0.15 m의 장대석, 남쪽 호안은 2.0 m×0.15 m의 장대석(상하 원지의 중앙부)으로 구성되 어 있고 서쪽은 호안석이 결실되어 확인할 수 없다.

    상부 원지의 북쪽 호안에 접하여 배치되어 있는 다 수의 경석(景石)은 원지 내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바닥에는 전면에 걸쳐 둥근 형태의 자갈이 깔 려 있어 화려한 수경을 보여주고 있다(Fig. 5).

    하부의 원지는 서쪽과 남쪽의 호안석이 발견되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회색의 니질토 띠에 의해 판 단하여 보면, 그 규모는 동서 2.8 m, 남북 5.2 m로 추 정되었는데(BNR, 2010) 경석은 발견되지 않았다. 원 지의 바닥은 북쪽의 장대석 부근에서 상부의 원지와 같이 강자갈이 부분적으로 확인되었으나 남쪽으로는 발견되지 않았다. 바닥의 자갈은 물의 유동이 비교적 많은 상부의 원지를 중심으로 바닥에 자갈을 포설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부의 원지에는 괴석이 배치되지 않았는데 원지 전체의 구성으로 볼 때 상부 원지에 치우쳐 배치되어 있어서 하부 원지에서는 비 교적 넓은 수면을 유지하도록 배려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3.1.4.3.집수시설

    집수시설의 원지는 중앙 원지의 동남쪽에 위치하 는 원지로 규모는 동서 6.1 m(추정), 남북 7.1 m의 장 방형이며, 호안에는 판석이 부분적으로 사용되었다 (BNR, 2010)(Fig. 6). 한편 바닥은 토사로 처리되었다.

    왕궁리의 원지는 궁원에 해당하는 원지로써 호안 구성과 바닥의 처리, 그리고 괴석의 배치 등은 궁원다 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또한 원지가 건축물 사이에 위 치한 관계로 건축물의 배치에 의한 건축선의 영향으 로 정형적인 직선호안의 장방형 형태를 취하여 공간 구성상의 통일성과 질서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 다.

    3.2.백제 원지의 구성요소

    3.2.1.원지의 형태 및 규모

    백제의 원지는 형태에 있어 방형의 정형적인 형태 를 보여주고 있는데 정방형보다는 장방형이 주류를 이루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규모에 있어서는 다양한 크기를 보이고 있는데(Table 1) 정림사지 원지와 미륵 사지 원지는 사찰의 규모에 따라 적절한 크기로 구성 되었으며, 왕궁리 원지는 건축물 배치와 밀접하게 관 련된 공간의 크기로 원지가 조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원지의 조성에 있어서 호안에 직선적인 선형을 사 용함으로써 질서가 있고 단순명쾌한 원지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백제의 직선적인 호안을 기반으로 하 는 장방형 원지는 후대에도 전통적으로 이어져 조선 시대의 원지는 방지(方池)로써 대표성을 갖게 되며, 이는 원지 디자인의 전통적인 원리로 자리를 잡는 바 탕이 마련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3.2.2.원지의 호안 구성

    원지의 호안축조에 대부분의 경우 석재를 사용하 고 있는데 자연석, 할석, 장대석, 판석 등의 석재를 사 용하고 있으며, 특히 왕궁리의 경우 장대석과 판석의 호안은 궁원에 조성된 원지의 호안에 사용된 가공석 으로 왕궁으로서의 위엄과 품격을 보여준 것으로 생 각된다. 미륵사지의 경우 유일하게 석재를 사용하지 않고 점토의 토안으로 축조함으로써 자연스러운 호안 으로 조성하는 한편, 부분적으로 와편 또는 할석을 섞 어서 쌓은 호안으로 축조하였다.

    호안의 축조방식에 있어서는 석재를 수직적으로 쌓아 직선의 호안으로 구성하고 있다. 왕궁리의 중앙 원지의 경우 궁궐축대의 장대석 단을 원지의 북쪽 호 안으로 취하고 있음은 특이한 사례이다. 토안으로 호 안을 구성한 미륵사지의 경우에도 호안선이 부분적으 로 약간의 굴곡을 보이는 곳도 있지만 호안은 수직면 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Table 2).

    3.2.3.원지의 바닥 구성

    백제 원지의 바닥은 토사로 처리되었으나 유일하 게 바닥을 석재로 처리한 왕궁리의 원지는 궁원이라 는 위계에 걸맞게 점판암을 포설하거나 자갈을 깔아 고급스러운 바닥처리를 하였고 경석을 화려하게 배치 하였음을 볼 수 있다(Table 3). 식재에 있어서 연꽃을 심은 경우가 주목되는데 특히 사찰의 원지에서는 모 두 이에 해당되었다. 또한 미륵사지의 경우 호안에서 왕버들의 식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원지의 수심은 정림사지의 원지 0.5 m를 제외하고 는 정확한 치수를 확인할 수 없었으나 추론하건데 모 두 얕은 수심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된다.

    3.3.아스카의 원지

    아스카시대는 한반도로부터의 도래인(渡來人) 집 단에 의해 작정법, 정원을 이용한 의식, 원유(園遊) 등 의 정원문화가 전해지고 정착한 시대이다. 특히 7세기 에는 전술한 바와 같이 日本書紀에 정원조성에 관 한 구체적인 기술을 볼 수 있는데, 추고천황 20년조의 기사로써 도래인에 의한 정원조성에 관한 내용이다. 아스카시대의 정원에 대한 발굴조사에 의해 원지유구 가 확인됨으로써 본격적으로 정원이 만들어진 시대였 음을 알 수 있다.

    3.3.1.도장(島庄, 시마노쇼)유적 원지

    도장유적의 원지는 일찍부터 도래인들이 모여 살 았던 지역의 아스카천(飛鳥川) 변의 완경사지에 축조 된 방형의 연못으로 소가노우마코(蘇我馬子)의 저택, 또는 천무(天武)천황의 별궁 등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소가노우마코는 당시 도래인계의 권력자로써 백제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던 인물이다(Yoo, 2013). 원지는 모서리가 각지지 않고 둥글며, 거의 방 형으로 한 변이 42 m, 깊이는 약 2 m이고 호안은 직 경 0.5 m 정도의 하천석을 수직으로 쌓았다. 바닥은 전면에 0.2~0.3 m의 강돌을 깔았으며, 중앙으로 완 만하게 경사져 있다. 원지의 북쪽 중앙 호안 하부에서 목통암거가 발견되었다. 방형의 원지 외에 석조암거, 곡구(曲溝), 울타리(柵), 굴립주(掘立柱)건물, 소지(小 池) 등이 검출되었는데 출토된 토기로 보아 6세기 말 부터 7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Nara National Cultural Properties Research Institute, 1998, 이하 NNC)(Fig. 7).

    3.3.2.석신(石神, 이시가미)유적 원지

    석신유적의 원지는 아스카사(飛鳥寺)의 북쪽에 위 치하고 수미산석(須彌山石)과 석인상(石人像)이 출토 되었는데 석조물의 정교한 세공으로 보아 백제로부터 의 도래인에 의한 제작으로 생각되고 있다(Ono, 2010). 원지는 남쪽과 북쪽에서 두 개가 발굴되었다. 북쪽의 원지는 정방형으로 한 변이 6 m이고 깊이는 0.8 m으로써 호안은 하천석을 2~3단 쌓았는데 네 귀 퉁이에는 입석을 세웠다. 바닥은 점토를 깔고 그 위에 작은 돌을 전면적으로 부설하였다. 7세기 중반에 축조 된 것으로 추측되며, 日本書紀에 기술된 제명조(齊 明朝 655-661)에 향연을 위한 시설로 추측하고 있다. 남쪽의 원지는 동서 3 m, 남북 3.2 m의 방형이며 깊이 는 약 0.6 m이다. 호안은 자연석을 세워서 축조하였고 바닥은 황색 점토 위에 조약돌을 깔았다. 축조시기는 7세기 후반으로 추측하고 있다(NNC, 1998, Fig. 8).

    3.3.3.군산(郡山, 고리야마)유적 원지

    관아, 사원의 정청에서 발견 된 원지로 동서 3.7 m, 남북 3.5 m, 깊이 0.8 m의 방지이다. 호안은 베개 모양 의 긴 하천석을 세로로 4~5단 쌓았으며, 바닥은 점토 위에 조약돌로 깔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북쪽 호 안의 중앙에서 급수용 석조의 도랑이 원지와 접속하 고 있으며, 서쪽 호안의 중앙에는 배수용 석조도랑이 검출되었다. 축조 시기는 바닥에서 출토된 토기로부 터 8세기 초로 추정하고 있다(NCC, 1998, Fig. 9).

    3.3.4.비조경적(飛鳥京跡, 아스카교아토) 원지

    비조경적 원지는 나라현 아스카촌에서 발굴된 유 구로 직선을 기본으로 하는 두 개의 못과 남북방향의 수로, 굴립주 건물 등이 확인되었다. 이 원지는 日本 書紀에 기록된 천무천황의 ‘백금후원(白錦後苑, 시 라니시키노미소노)’으로 추측하고 있다.

    남쪽 원지는 동서 65 m, 남북 55 m, 깊이 약 3 m의 오각형 평면의 원지로서 남안(南岸)의 양쪽 모서리는 곡선으로 처리하였다. 호안석축에서 동안(東岸)은 높 이 3 m이상으로 1 m전후의 큰 돌을 4단 이상 축조 하였으며, 서안은 높이 1.3 m의 석축호안으로 구성하 고 있다. 못 바닥은 0.1~0.3 m 크기의 돌을 평탄하게 전면에 부석(敷石)하였으며, 동안과 남안에 연하여 높 이 약 0.25 m, 폭 약 2 m로 한 단 더 부석하고 있다. 그 리고 못 안에는 2개의 섬이 배치되어 있으며, 또한 분 수시설과 석조가 출토되었다.

    북쪽 원지는 동서 33~36 m, 남북 46~54 m, 깊이 3 m의 장방형의 원지로서 못 바닥은 편평한 부석으로 처리하였으며, 못의 수심은 약 3 m에 이른다. 북동의 모퉁이에 계단상의 시설이 있으며, 북안에는 남북방 향의 석축구조의 수로가 연결되어 있다(Fig. 10).

    도수시설은 남지에 세워진 석조물과 그 남쪽에서 발견된 석조물까지의 석조암거(石組暗渠)로 이루어 졌음을 확인하였다. 그 밖에 남지의 남안과 동안에서 굴립주가 발견되었다(Kim, 2000).

    3.4.아스카 원지의 구성요소

    3.4.1.원지의 형태 및 규모

    아스카시대의 원지는 형태적인 측면에서 방형의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비조경적의 원지를 제외하고는 정방형에 가까운 형태를 나타내고 있는 점도 특기할 만한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직선적인 형태의 방형원지는 일본의 정원에서는 아스카시대에 유일하 게 보이는 형태적인 특징으로 이후의 시대에는 거의 볼 수 없는 원지의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비조 경적 원지는 남쪽 원지가 방지의 형태에서 벗어나 오 각형의 평면형태를 보이며, 모서리 또한 곡선을 나타 내고 있는 점은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Table 4). 이는 나라시대에 출현하는 곡선형 원지로 이행하는 중간단 계의 형태로써 방형의 변형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또 한 비조경적 원지의 두 개의 섬, 역시 과도기의 사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원지의 규모는 저택, 별궁에 조성된 작은 규모의 원 지와 궁원에 조성된 비교적 큰 규모로 대별할 수 있는 데, 이는 원지의 성격에 따라서 규모를 달리하는 것으 로 생각된다. 원지의 깊이는 비조경적의 원지와 도장 유적의 원지는 극단적으로 깊은 원지로 구성되어 있 으며, 상대적으로 군산유적과 석신유적의 원지는 깊 이가 얕은 편이다. 원지의 깊이는 관상, 선유(船遊) 등 의 원지의 이용과 관련이 클 것으로 판단된다.

    3.4.2.원지의 호안 구성

    아스카의 원지는 모든 원지에 있어서 호안축조의 재료로써 하천석을 사용하고 있는데 하천석은 모가 지지 않는 둥근 형태의 자연석이다. 호안축조에 동일 한 형태의 소재를 사용하여 통일감있는 원지의 형태 를 나타내는 것이 특징적으로 생각된다.

    호안은 호안석을 수직적으로 쌓는 방법을 기본으 로 하고 있는데, 특히 석신유적의 북쪽 원지에서 볼 수 있는 원지의 네 모서리에 호안석을 세워서 쌓는 입석 의 축조는 호안에 엑센트를 주는 장식적인 기법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석신유적의 남쪽 원지는 자연석 을 세워서 호안을 축조하였으며, 군산유적의 원지는 하천석의 긴 변을 세로로 쌓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음 은 특이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Table 5).

    3.4.3.원지의 바닥 구성

    아스카 원지는 원지의 바닥면에 하천석, 조약돌, 자 갈 등의 석재를 깔아 처리한 부석공법을 구사하고 있 는데 사용한 석재의 크기는 다양하다. 바닥을 돌로 포 장한 원지는 통일감과 세련된 분위기를 나타낼 수 있 다. 또한 원지바닥에는 도수를 위한 시설들이 발견되 었는데 도장유적의 목통암거, 군산유적의 석조 배수 로, 비조경적유적의 석조의 암거와 석축 수로, 그리고 분수시설이다(Table 6).

    아스카의 원지는 바닥에 돌을 깔았으므로 당연히 식재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수심에 대한 자료는 대부 분이 불명이다.

    4.결 론

    한국의 백제와 일본의 아스카는 상호 문화교류를 활발히 전개하였는데 아스카는 백제의 도래인에 의하 여 전래된 정원기술을 통하여 정원을 조영하였다. 이 는 백제와 아스카의 발굴된 정원의 자료를 통하여 확 인할 수가 있는데, 특히 원지의 구성에서 백제의 영향 을 받았던 아스카의 원지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백 제와 아스카의 원지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백제와 아스카의 원지가 그 형태에 있어서 직선의 호안을 도입한 방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백제의 방형원지에 비하여 아스카의 원지는 정방형에 가까운 경향을 보이고 있으나 방형이라는 동질성을 갖는 원 지로 조성되었다. 백제의 궁원과 사찰의 원지에서 일 관되게 직선적인 호안을 사용한 것은 백제의 디자인 의식의 단면을 뚜렷이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 며, 이는 아스카로 전래된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아스 카의 비조경적 남쪽원지에 나타난 오각형 원지와 섬 의 등장은 후대에서 나타나는 곡선형의 원지로 이어 지는 과도기적인 중간단계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원지의 호안은 백제와 아스카가 공히 석재를 수직 적으로 쌓는 방식을 사용하여 축조하고 있다. 호안축 조의 재료로써 백제는 자연석, 할석, 장대석, 판석 등 의 다양한 석재를 사용하고 있으며, 석재를 사용하지 않는 토안의 사례를 볼 수 있다. 한편 아스카는 모가 지지 않는 둥근 형태의 하천석을 모든 원지의 호안축 조에 일관되게 사용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호안 의 네 개 모서리에 호안석을 세워서 쌓는 입석의 축조 는 호안에 엑센트를 주는 장식적인 기법의 예를 볼 수 있다.

    원지의 바닥 처리에 있어서 백제는 대부분이 토사 로 처리하는 단순한 수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여기에 연꽃을 식재한 사례를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점판암과 자갈을 깔아 처리하고 경석을 배치한 사례도 찾아 볼 수 있다. 아스카의 경우는 예외가 없이 바닥의 전면 (全面)에 하천석, 조약돌, 자갈 등의 석재를 깔아 처리 한 부석(敷石)공법을 구사하여 화려한 모습을 나타내 고 있는 점은 특징적이다. 또한 아스카의 원지 바닥에 는 배수로, 암거, 분수 등의 시설을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이 한일 양국의 고대정원 유구에 대한 발 굴자료를 통하여 원지의 형태를 중심으로 원지의 구 성에 대하여 살펴보는 과정에서 아스카에 전래된 백 제의 정원기술을 확인할 수 있었다. 향후 발굴이 진행 되고 원지에 대한 자료가 더 많이 모아진다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원지의 발달적인 측면을 다루 어 계보화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방형의 원지 디자인의 역사적인 전개과정 을 살펴보면 한국의 경우 백제의 방지형태가 후대의 원지조성에 있어서 전통적인 디자인의 근간이 되어 조선시대까지 계승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아스카의 방지형태는 후대에 이어지지 못하여 단절되고 나라시대부터는 곡선을 도입한 원지가 만들 어지게 되어 결과적으로 아스카의 원지만이 방형으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본 논문에서는 다루지 못하였지만 백제와 아 스카 원지의 형태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방형 원지 의 형태론에 대한 이론적인 배경과 아스카의 방형 원 지에서 곡선형 원지로 전환되는 배경에 대한 고찰이 기대된다.

    감사의 글

    이 논문은 전남대학교 학술연구지원에 의하여 수 행되었음.

    Figure

    JESI-27-123_F1.gif

    Buyeo Gwanbuk-ri pond (BNRI, 2009).

    JESI-27-123_F2.gif

    Buyeo Jeongrimsaji (East pond) (BRI, 1987).

    JESI-27-123_F3.gif

    Iksan Mireuksaji (West pond) (BNRM, 1996).

    JESI-27-123_F4.gif

    Iksan Wanggung-ri pond plan (A Part of palace) (BNR, 2010).

    JESI-27-123_F5.gif

    Iksan Wanggung-ri center pond (A Part of pond).

    JESI-27-123_F6.gif

    Iksan Wanggung-ri sump facilities (BNR, 2010).

    JESI-27-123_F7.gif

    Shimanosho (A part of pond) (NNC, 1998).

    JESI-27-123_F8.gif

    Ishigami pond plan (North pond) (NNC, 1998).

    JESI-27-123_F9.gif

    Koriyama pond plan (NNC, 1998).

    JESI-27-123_F10.gif

    Asukagyoato (South pond) (Nara National Cultural Properties Research Institute, 2006).

    Table

    Pond form and size

    Pond shore materials and construction type

    Composition of pond floor

    Pond form and size

    Pond shore matrials and construction type

    Composition of pond floor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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